타로의 근원 - 서양 신비주의
- C. R. Stella
- 2022년 8월 7일
- 3분 분량
"타로는 정확하지 않으니까 사주로 볼래?"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정말 타로보다 사주가 정확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두 가지 모두 각자의 특성을 가진 좋은 역학이고, 서로가 담당하는 영역이 다릅니다. 볼 수 있는 것이 다르다고 표현하면 알맞겠네요.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할까요? 그 이유는 사주의 가격이 훨씬 비싸고, 타로보다 사주에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계화의 시대라고 하지만 극동 아시아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어쩔 수 없이 동양 문화권인 까닭에 한국인은 사주나 무속의 개념이 타로에서 말하는 철학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길을 걷다 발견하게 되는 타로샵의 간판이 주로 사주&타로인 이유도 사주나 무속을 주로 하시던 분들이 타로를 부가적으로 배워서 추가한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양쪽 모두 제대로 배워서 사용하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사주는 잘 보는데 타로는 이상한 경우가 빈번하고 이런 집들은 위에서 인용한 사주 예찬론을 주장합니다. 사주는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가 수백 년이 넘었지만 타로는 고작 30년 전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지요. 이런 분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는 "사주는 학문이고, 타로는 체계가 부실하다."같은 무지함이 빚어낸 오해도 있습니다. 사실 체계의 정교함이나 발전도 면에서는 서양의 신비주의 체계가 훨씬 앞섬에도 공부를 해보지 않았으니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타로 속에 담긴 서양의 신비주의 체계

현대 과학의 등장 이전에는 신비주의 철학이 대학 레벨에서 연구되던 학문이었다.
평생 동양의 오컬트에만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첨부한 사진을 번역을 해서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서양의 오컬트는 현대 과학이 분화되기 이전까지 체계적인 과학으로 대학 단위에서 연구되던 학문입니다. 동양의 성리학이 국가의 이념이었던 것과 유사하지만 이쪽은 훨씬 더 세밀한 부분까지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 뿌리에서 현대 과학이 분화되어 나왔으니 얼마나 정교한 이론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타로카드를 연구하고 만든 사람들은 복잡한 신비주의 이론을 집대성해서 정립한 다음 카드에 상징을 그려넣음으로써 도구를 완성했습니다. 흔한 한국인의 인식처럼 예쁜 그림을 아무렇게나 배치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발전한 서양의 신비학의 철학을 담은 도구인 것입니다. 타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이정표

타로는 신비주의 철학의 산물이다.
신비주의에 관심을 보이는 초보자를 보면 타로를 연구한 분들은 "리딩을 잘하기 위해서 어렵고도 복잡한 신비주의를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립니다. 이 말은 신비주의에 관심을 갖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보 시절에는 이런 것을 먹고 탈이 날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 리딩에 직접적으로 주는 도움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신비주의는 전혀 필요하지 않구나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카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는 서양 신비주의적 사고방식이 큰 도움이 되며, 이러한 이해는 카드의 본질을 살피는 데에 이롭습니다. 초보자도 본격적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친해지는 것 자체는 좋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초보자 분들은 지나치게 파고 들려는 습성이 있다 보니 웬만하면 말리는 것일 뿐,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말리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위에서 설명했듯, 한국인은 동양 문화권의 철학적 관점을 갖고 있어서 타로를 배우는 사람들마저 무속이나 사주와 같은 분야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서양 오컬트는 멀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니 자연스레 동양의 신비에 끌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타로를 공부하는 데에 이롭다고 하기가 힘듭니다. 결과적으로 서양 신비주의 철학에서 탄생한 도구를 서양의 관점을 갖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문화권의 차이는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공부는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양 마법 제례에 사용되는 마법 도구들
저는 어린 시절 호기심에 서양 신비주의를 시작했고, 타로는 그 일환이었습니다. 지금은 실천을 그만두었으나 타로를 연구하면서 이론적인 공부는 계속하고 있으며, 매일 관련 서적이나 칼럼을 찾아서 읽습니다. 모두 타로 공부를 위해서입니다. 제가 사주나 육임, 자미두수 등 매력적인 동양의 역학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용어조차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은 타로를 향해 쏟는 제 관점을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타로를 공부하다 보면 타로, 신점, 사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손가락을 담그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온갖 점술계 소식을 다 알고 있는 소식통처럼 보입니다. 본인이 시커이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중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타로 리더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관심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걸을지 정하는 일은 선택과 집중의 과정입니다. 하나를 원숙하게 다루게 된 다음에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듯, 자신이 걸을 길을 정했다면 그곳으로 온전히 노력을 쏟는 것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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