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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열법, 선택인가 필수인가?


커뮤니티에 올라온 해석 게시글을 보다가 마주했을 때 가장 눈에 거슬리는 단어는 '통'입니다. 배열법 없이 '통'으로 본다는 뜻인데, 사실 이 통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에 나온 이야기로는 따로 배열법의 자리별 의미를 정하지 않고 뽑은 다음, 카드의 분위기를 보고 해석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 가장 많습니다. 기존의 스프레드 모양을 활용하든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뽑든 배열에 규칙을 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해 보입니다. 배열에 자리별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보는 것이 가능한지 다뤄보려면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통 배열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종 변형 스프레드로 자기 입맛대로 자리별 의미를 정하는 행위 역시 배열의 규칙성 문제의 연장선상(延長線上)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있는 배열법의 자리별 의미를 무시한 개량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1. 배열법도 설계가 필요하다. 타로 황금기의 연구자들이 쓴 책들을 보면 배열법을 다룬 내용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점을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지요. 물론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배열법은 많지 않으며, 웨이트가 처음으로 소개한 켈틱크로스 배열법 역시 오늘날에는 자리별 의미가 수정되고, 불필요한 표시자 카드를 제거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배열법을 개량하는 행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A. E. 웨이트가 <타로의 그림열쇠>에서 소개한 원본 켈틱 크로스 배열법

<타로의 그림열쇠>에 소개된 켈틱 크로스 배열법은 3번 자리가 십자가의 아랫쪽에 배치되고 시계 방향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켈틱 크로스 배열법과는 달리 3번 자리가 위쪽에, 5번 자리가 좌측에 위치합니다.(상하좌우) 이는 가톨릭 성호를 긋는 방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가톨릭 신자였던 웨이트의 취향이 반영되었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 칼럼에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상하좌우 순서로 행해지는 가톨릭의 성호 긋기

래 켈틱 크로스라는 말은 켈트족의 십자가를 뜻하는 말인데, 로마의 가톨릭 선교사가 아일랜드에서 전도를 시작한 이후 현지에서 흔하게 사용된 상징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십자가에 원이 추가된 형태로서 각종 미디어(특히 게임)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원이 둘러진 켈트족의 십자가

최근에 통용되는 켈틱 크로스 배열법은 원래 켈트 십자가 상징이 갖고 있는 '순환'의 의미를 살려 아래로부터 3번 자리가 되는 '하좌상우' 방식입니다. 문제의 근원이 '뿌리'에 있다는 논리이지요. 이는 웨이트의 방식보다 조금 더 인간중심적 논리를 갖고 있어 저 역시 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자리의 순서와 의미를 변경하는 이러한 사례를 보고 나도 마음대로 개량해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러한 개량은 상술한 것처럼 상징의 의미에 오류가 없어야만 작동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카드를 놓는 순서는 바뀌었지만 자리별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는 자리별 의미가 수비학적 의미와 상징성을 조합하여 발생하는 의미를 바탕으로 정해지는 까닭입니다. 1. 하나, 개인 2. 타인 또는 대척점 3. 확산 4. 고정 5. 분란 6. 조화 7. 상승 8. 구조화 9. 인간의 한계점 10. 하늘의 완성 초보자가 보기에는 켈틱 크로스 자리별 의미와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 같은 항목도 있겠지만, 깊게 공부하고 보면 명백히 자리별 의미와 상통하는 의미들입니다. 이러한 수비학적 의미와 상징의 조합을 통해 배열법이 만들어지며, 카드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인 설계가 중요합니다. 모든 요소들이 합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지요. 켈틱 크로스 배열법의 구조가 견고하다, 완성도가 뛰어나다 말하는 이유도 이처럼 치밀한 설계 구조 때문입니다.

 

2. 배열법의 작동


부실 설계의 대표주자 컵 오브 릴레이션십

설계가 부실한 배열법의 사례로는 '컵 오브 릴레이션십(Cup of Relationship)' 배열법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명의 관계를 보는 배열법이지만 주체로 설정한 두 명의 자리가 뒤바뀌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배열의 구조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상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배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서 개량할 수 있지만, 초보자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컵 오브 릴레이션십 배열이 중요한 이유는 배열의 구조에 문제가 있으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 사례라는 점입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배열의 자리별 의미를 할당하는 등의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3. 배열법의 중요성 가다 집 학교 밥 문제 이렇게 나열한 문장을 해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고작 다섯 단어일 뿐인데 무슨 의미인지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가서 문제를 푼다."는 문장인지 "학교에서 밥을 먹고 집에 가서 문제를 푼다."는 문장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어를 조합해서 나오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말이 모국어임에도 정확한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학교 밥 문제 있어 간다." 여기서 카드의 의미를 해석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바로 배열법입니다. 타로의 언어를 사용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일정한 규칙을 만드는 '문법'인 셈입니다. 애초에 문법이 존재할 수 없는 원 카드 해석을 지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일리 리딩을 할 때에도 3카드를 권장하는 이유 역시 하나의 카드만으로는 배열법을 혜택을 받지 못해서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지요. 결론을 정리하자면, 통으로 보겠다며 배열법을 무시하면 오히려 해석이 어렵고, 두루뭉술한 분위기만 이야기하게 되는 단점만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4. 실제 효과는? 통으로 봐도 잘 보는 사람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내용처럼 타로를 정확하게 맞게 봤는지 여부는 초보자가 구분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우연과 실력을 구분하기도 힘든 데다, 실제 결과가 맞다고 한들 그것이 타로 리딩에 의한 결과물인지 다른 심리 트릭을 사용한 방식인지 검증하기 힘든 까닭이지요. 또한 특별한 영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로를 리딩했다고 볼 수도 없고요. "어떻게 쓰든 잘 쓰면 장땡"이라고 묻어버리는 결론은 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저도 실용성이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빠진 시기가 있었지만 상업적으로 남들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해야 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진지한 태도로 공부하는 연구자라면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서 최근에는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5. 결론 배열법은 단순히 눈에 예쁘게 보이라고 만든 퍼포먼스가 아니라 규칙입니다. 마음대로 자리별 의미를 할당한 변종 스프레드나 통 배열과 같은 방식은 구조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이상 그저 자의적인 상상력 남용의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효율성 측면에서 봐도 켈틱 크로스, 매직 세븐 등의 뛰어난 배열법을 놔두고 굳이 만들어 사용할 필요성이 크지 않습니다. 또한 배열법은 리더가 해석을 쉽게 하도록 돕는 장치이며, 동시에 틀리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 역할도 하는데, 이를 포기하고 더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은 공연한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배열법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등 없으며, 배열법의 설계에 능숙한 숙련자가 아니면 위험성이 크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배열에 비해 큰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기존의 배열법을 더 열심히 연구하고 수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바른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 경 고 켈틱 크로스의 구조는 제가 이 칼럼에서 언급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배열법의 구조 역시 단순히 제가 첨부한 단편적 수비학을 토대로 하기에는 넓은 분야입니다. 임의로 배열법을 개량/창조하다가 생긴 사고에 대해서 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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