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열쇠'로 독학하기?
- C. R. Stella
- 2022년 8월 28일
- 5분 분량

칼럼을 쓰면서 가장 많이 인용하게 되는 책은 <타로의 그림열쇠>(Pictorial key to the tarot)입니다. 이 책은 1911년에 라이더-웨이트 타로 덱의 제작자인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가 자신이 타로 덱을 개정한 이유를 해설한 논문으로서, 웨이트 덱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정확한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덱을 제작한 사람이 직접 쓴 책이니 당연하게도 이보다 확실한 기준은 없습니다. 그러나 독학을 하는 사람에게 그림열쇠가 반드시 유익한 것은 아니기에 키보드 앞에 앉았습니다. 이전에 쓴 여러 칼럼에서 잘못된 강의를 비판하거나, 타로 이론을 다룰 때 논거로 사용했기 때문에 여기 계신 초보자 분들이 제가 그림열쇠를 사서 읽기를 적극 권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자세한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학을 하는 방법을 다루는 칼럼에서 그림열쇠로 모든 것을 규명해야 한다는 논조로 글을 쓴 탓도 있습니다. 해서 오늘은 독학자가 접했을 때 위험한 이유들을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워낙 무겁고 어려운 주제라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지만, 독학자 여러분을 위해 글을 쓴다는 초심을 기억하며 조심스레 적어봅니다. ◎ 그림열쇠의 위험성 사실 저는 초보자에게 그림열쇠 읽기는 권하는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읽지 말라고 말리는 편에 가깝습니다. 제작자가 직접 쓴 책이니 가장 정확하다면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 웨이트라고 해서 타로 분야의 모든 영역을 다 밝혀낸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는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웨이트 스스로도 아직까지 타로 체계는 완전하지 않다고 시인하고 있을 정도이니(해석을 제멋대로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1. 완전하지 않은 체계 신비주의 집단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수많은 비밀결사의 신비학자들이 타로를 연구했지만 모든 부분을 다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오컬트라는 분야의 특성상 과학적인 증명이 힘들고, 웨이트가 책에서 언급했듯 세세한 부분으로 갈수록 체계의 허점이 많이 드러나는 까닭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트 카드로, 웨이트는 전통적인 페이지, 나이트, 퀸, 킹의 체계를 선택했지만 오컬트 체계에 더 집중한 토트, 골든던 타로 등의 다른 덱들은 코트의 계급 명칭이나 순서가 다릅니다. 신비주의 결사에서는 오컬트 체계와는 썩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웨이트 덱을 비판하며, 토트 덱이나 여타 신비주의적 타로 덱들이 보다 정확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 개인의 학문적 견해와는 별개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자 하는 글이니 이에 대한 의견은 차치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자면 체계의 불완전성, 그리고 웨이트 개인의 한계는 그림열쇠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주된 원인으로 꼽힙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자주 소개되는 타로 '알비파' 기원설'도 하나의 사례입니다. 웨이트는 <타로의 그림열쇠>에서 각종 타로 기원설들을 비판하며 카톨릭 교회의 탄압을 받았던 기독교 신비주의 종파였던 '알비파'의 비밀 암호 체계가 타로라는 체계로 살아남았다는 주장을 했지만, 본인 스스로도 근거가 빈약함을 느꼈는지 그저 하나의 가벼운 제안 정도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당시에는 역사적으로 타로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정확하게 학문적 연구가 나왔던 시대가 아닌 까닭에 이처럼 각종 상상력을 동원한 주장들이 난립했던 때였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제시된 이집트 - 집시 기원설을 비판했던 웨이트 본인도 역사적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아이러니함은 시대의 한계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모르는 초보자들은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이외에도 웨이트 스스로도 썩 맞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한 0번 카드의 순서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신비주의 체계 대응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2. 웨이트의 실수 역사적 사실 관계가 틀린 것은 카톨릭 신도였던 웨이트의 취향 문제도 있지만, 시대의 한계성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제반 지식이 갖춰진 숙련자라면 해외 논문을 찾아 읽고 가려서 받아들이면 되는 영역이지만, 웨이트 본인이 완벽하게 실수를 해버린 곳도 존재합니다.

'<타로의 그림열쇠> - 정현근 역'에서 발췌
Ac를 설명하면서 웨이트는 '네 개의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는 컵'이라고 서술하였으나, 여러분이 보다시피 그림에는 명백히 다섯 개의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파멜라 콜먼 스미스가 멋대로 상징을 그리지 않도록 철저히 감독했다고 여러 차례 밝힌 관계로 이것이 '의도된 변경인데 본문을 수정하지 않았다'는 해석과 '오감을 표현하기 위해 스미스가 독단적으로 변경했다'는 해석으로 나뉘어 오늘날도 타로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을 하는 주제입니다.
역방향 키워드가 아예 누락된 2c의 사례(별다른 의미의 변경이 없음에도 해당 사유가 기록된 4w의 사례로 볼 때 이질적이어서 이것을 웨이트의 실수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음)도 유명하며, 카드 해석에서 완전히 다른 카드를 지목하는 등의 실수도 있어 충분한 교양 지식이 없는 사람이 오해할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잘 아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실수가 구분이 되는 편이지만 보통의 초보자들에겐 이것 역시 큰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 신비주의자의 글쓰기

A. E. Waite - 1914 (England, UK)
신비주의 비밀결사의 구성원들은 '침묵의 서약'이라는 것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식을 보호했습니다. 자격이 없는 자가 중요한 비밀에 접근하는 일을 막는 장치로서 전혀 모르는 일반인은 올바르게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문장으로 글을 썼습니다. 때문에 국내 번역본 <타로의 그림열쇠>를 두고 발번역이라는 억울한 비난도 많았는데 세간의 평과는 달리 충실한 번역임에도 원전 자체가 빙빙 꼬아서 써놓은 탓에 관련 지식이 없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 까닭에, 지금까지도 독자의 무지함 때문에 벌어진 일을 번역자의 역량 부족인 것처럼 소문이 퍼져서 공연한 비난을 듣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가 본인이 정확히 어떤 개념을 말하는 것인지 드러내지 않고 신비주의에 존재하는 개념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는 만큼만 보이는 문장으로 썼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문장을 들여다 봐도 모르면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하는 스승이 없는 초보 독학자라면 더욱 효율성이 떨어지는 방향입니다. 1. 대중 서적이 아니다. <타로의 그림열쇠>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책이 아니라 학술 연구 논문입니다. 웨이트가 책에서 제시하는 근거들은 당대의 신비학자, 역사학자, 철학자들의 논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당연히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참고 도서 목록을 일일이 찾아서 번역하여 읽는(부분만이라도) 수고가 필요합니다. 취미로 가볍게 하겠다는 사람이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이 스승의 존재 없이 올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일 것입니다. 2. 웨이트의 인용 초보자 분들이 그림열쇠를 접하면 골치 아픈 내용들을 뛰어넘어 키워드만 설명해놓은 부분만 탐독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상술했듯 초보자가 지식 없이 이해하기 불가능하므로 당연한 수순일지 모릅니다. 억지로 읽어본들 해답이 나오진 않으니까요. 그러나, 책에서 웨이트 본인이 확고하게 언급했듯 점으로서의 의미들을 설명한 내용들은 가치가 없거나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 많습니다. 이전 칼럼에서 잠깐 언급한 '에띨라'의 저작에서 가져온 키워드가 거의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심지어는 본인이 가져와 써놓고도 비판을 같이 쓴 사례가 다수 있습니다. 이는 <그림열쇠>가 논문이기 때문에 참고 자료를 인용한 까닭입니다. 이해가 쉽도록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동의보감>과 비슷하게 총 집대성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녀위남법, 귀신 보는 법 등의 주술적인 내용까지 동의보감에 수록된 이유는 당대에 존재하는 모든 처방을 담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의 의관들도 믿지 않는 처방이지만 집대성 서적인 탓에 수록된 것입니다. 웨이트의 <그림열쇠>도 같은 이유로 당대에 존재하는 모든 레퍼런스를 참조하여 썼기 때문에 웨이트의 설계와는 일치하지 않는 의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후반부에 수록된 키워드 정리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신뢰하기 힘듭니다. 3. 근본주의 타로를 가볍게 보는 국내 타로 커뮤니티의 현실 때문에 숫자가 적긴 하지만 오로지 웨이트의 서술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전 칼럼에서도 언급한 코트 카드의 외모 해석이나 켈틱 크로스 스프레드의 표시자 카드는 현대 타로의 발전으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거나 더 좋은 개량형이 있음에도 웨이트의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그림열쇠를 읽다 보면 이해를 하지 못하고 겉핥기만 해도 시중에 나온 책들이 얼마나 비전문적인 내용이 많은지 비교는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근본주의로 빠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 국내 타로계의 현실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 원인인데, 수차례 언급했듯 유명세를 떨치는 강사들이 강의나 책에 써놓은 내용들이 그림열쇠와 너무 다른 방향인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현실에 실망해서 원전에 천착하는 근본주의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 결 론 웨이트 본인이 쓴 책이라는 점에서 그림열쇠는 가장 정확한 레퍼런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초보자가 오해하기 쉽고 위험한 책입니다. 칼럼마다 그림열쇠를 어렵다고 경고하면서도 어떤 때에는 가장 정확하다고 논거로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이 칼럼을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정말 독학자가 타로를 깊게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 때문입니다. 이 밴드는 독학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작은 도움을 주는 용도로 만들었지만 사실 지도해 줄 스승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착오 없이 정답으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함정이 많은 그림열쇠를 추천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림열쇠를 읽지 않아도 쉽게 타로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으면 저는 당연히 우리 밴드 공식 강의를 추천하겠지만, 금전적 여유가 없거나 꼭 혼자서 가고 싶다면 시행착오를 각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책 한 권 읽는다고 전문가가 된다면 그 분야는 희소가치가 없습니다. 비싸 봐야 3만원 내외인 책을 사서 읽고 누구나 현업 타로 리더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정말 타로를 잘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만 봐도 이 분야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재정적 여유가 부족한 입문자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책을 추천 받아서 공부를 하고 싶겠지만 국내 여건 상 믿을만한 책을 찾기 힘든 데다가 내용에 크게 무리가 없는 책이라도 초보자 대상의 책은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단점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입문자가 처음부터 그림열쇠를 읽는 것은 저도 반대합니다. 반드시 독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시중에 나온 책을 골고루 다 읽어보고 잘못된 지식이라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걸러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타로에 많이 익숙해진 이후라면 최종 목적지 개념으로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지만 그건 혼자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쉽게 퍼져있는 잘못된 지식으로 만족하고 넘어가겠다면 그것 역시도 개인의 선택이겠지요. 너무 무책임하게 그림열쇠를 추천 아닌 추천을 해버린 상황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쓰는 글입니다. 책 자체의 위험성과 독학자가 각오해야 하는 사항을 최대한 서술하려고 노력했으니 충분히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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